[독서소모임/서평]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역사의 소용돌이 속 경제학

이 책이 집필된 연도는 1992년이다. 생각보다 꽤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이 명저는 퇴색되지않고 빛을 발하고 있다. 그 이유는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어쩌면 그때 그 시절과 같이 시대를 관통하는 '무언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 책은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해당 시대의 경제학자에 대해 소개하고, 그 경제학자들의 생애와 의견을 이야기한다. 처음 자본주의 시대의 도래와 함께 등장한 애덤스미드의 '보이지 않는 손'을 시작으로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부자의 경제학과 빈민의 경제학을 노래한다.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목사의 아들이면서 너무나도 냉정했던 멜더스, 조국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불행했던 리스트, 천사와 악마의 명성을 동시에 얻은 마르크스까지..

여기서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 보호무역을 해야한다는 리스트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단결을 외친 마르크스다. 리스트의 경우에는 리스트가 밟아왔던 조국을 위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이 어쨌거나 잘 흘러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극적이기도 했고, 또 그의 의견이 결국 독일의 나치즘까지 이어졌다는 의견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는 경제학자로서 매우 뛰어났고, (비록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독일 국민들에게 '우리는 하나의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렇지만 결국은 수많은 학살과 탄압으로 이루어진 결과라니... 마냥 그의 탓은 분명 아닐 것이고, 모든 것의 상호작용의 결과라지만 그 인과관계의 결과가 참담하다니 흥미롭고 암울했다.

다음은 마르크스다. 사실 나는 유시민 작가의 책을 꽤 좋아하는데, 그의 책을 읽다보면 마르크스의 얘기가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그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이 있는 인물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르크스를 읽다보면 재밌는 느낌이 든다. 바로 사람들이 모두 "인간 마르크스"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마르크스의 사상"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냥 위험한 이론이다, 모두에게 자유를 줄 사람이다, 어쩐다 저쩐다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의 상상력에 의해 마르크스는 더욱 천사가 되고 악마가 되는 느낌이다. 인간 마르크스를 살펴보면 젋은 시절 아내와 뜨겁게 사랑하고, 장인어른과 토론하는 것을 즐겼으며 친한 동반자 앵겔스와 함께했던 꿈많고 열정적인 청년이었다. 또한 그렇게 마르크스를 헐뜯던 자본가들과 달리, 그는 부르주아지들도 자본의 주인임에 동시에 자본의 노예로서 따뜻한 시선을 보낸 것도 흥미로웠다. 결국 그가 말하길 우리는 모두 "프롤레타리아트"이고, 단결해서 새로운 세상을 얻자! 라는 것이었다. 물론 얻어서 어떻게 살것인지 제대로 말을 못했던 것을 보면, 그 자신도 그런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왜인지 나는 마르크스라는 사람의 생애를 항상 부러워했는데, 그는 내가 원하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자로서 뛰어난 천재임과 동시에 악명과 찬사를 함께 받았으며, 자신의 사상과 이론으로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가슴속에 뜨거운 열정을 심어주었다는 점이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명예와 반대로 행복하진 않은 삶을 산 것까지 완벽하다.) 지금도 공산당 선언을 읽다보면 선진국에서 자본주의의 혜택을 받고 살아가는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단결하고 평등을 외치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세상은 변하고, 더이상의 "절대 빈곤"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켰다 실패한 나라들이 생기면서, 공산주의라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나라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유시민 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언제나 역사란 야속한 것이어서, 우리는 한명의 개인으로서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문외한이었던 경제학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되었다. 단지 "나 이런거 저런거 알아요!" 하는 지식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생긴 느낌이다. (물론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른다 ㅎ)

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한 치' 앞은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그런 의미에서 정진해야지!!

 

인상깊었던 구절들

• 조화론적 세계관을 정립하고서도 조화롭지 않은 현실사회의 계급투쟁을 직시한 그의 사상은 제자들에게 계승되면서 적대적인 두 갈래의 사상으로 분열되었다. 모두 아담 스미드의 제자임을 자처하는 두 진영의 사상가들은 공히 스승의 사상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하고 원하지 않는 것은 냉정하게 배격해버렸다.

• 스미드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은 스미드의 노동가치론을 완전히 배격하고 스미드의 사상에서 서로 다른 상품 사이의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또 다른 공통점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상품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성질, 즉 효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미드의 사상에서 각자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만을 계승한 두 진영의 경제학자들은 서로 '부르주아계급의 앞잡이' 또는 '과학자가 아닌 증오의 전령사'라는 비난을 퍼부어댔다.

• 인구법칙이 인간에게 가하는 고통과 재난을 더 없이 실감나게 설명해놓고서는 그 재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산아제한에는 한사코 반대한 것이다. 산아제한을 할 정도로 난잡한 성적 교제는 인간 본연의 품위를 가장 현저하게 떨어뜨리는 것 같다. 남자의 경우에도 그렇지만 특히 여성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또 그 온화하고 여성다운 성품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

• 가난한 노동자는 속된 표현으로 하루살이처럼 산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상이며 현재ㄱ에 이르기까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나태하고 방종한 사람들은 가난이라는 벌을 받고, 갖은 난관과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과 도덕적 절제력을 가진 사람은 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유유자적'이라는 상을 탄다. 부자들의 마음을 이토록 편안하게 해주는 사상이 있으랴!

• 아담스미드가 "철학자와 지게꿈의 차이는 마스티프 개와 그레이하운드 개의 차이의 반도 안된다.", "인간의 타고난 재능은 모두 비슷하지만 교육과 환경의 차이 때문에 서로 다른 삶을 살게 된다"고 말한 것과 비교해보면 부자들에게 맬더스의 사상이 갖는 의의는 대단한 것이다.

• 리스트 - 참으로 선동적인 문장이다. 여기서 리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너무나 뚜렷하다. 공업생산력에서 뒤진 나라가 앞선 나라와 자유무역을 할 경우 반드시 그 나라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 그에게는 오직 집단으로서의 국민, 역사적운명 공동체인 '국민국가'만이 중요했다. 이것은 당시 상황에서는 절실하게 필요한 사상이었다. 그러나 독일의 공업력 발전이라는 간절한 소망이 이룩되자 그의 사상은 무자비한 독재 체제를 정당화하고 약소민족에 대한 지배와 수탈을 합리화하는 국가주의적, 국수주의적 독극물로 변용되었다. 이러한 사태는 시대 상황의 변화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느정도는 리스트 자신의 책임이기도 하다.

• 스미드의 신세계는 둘로 분열되었다. 자산계급, 즉 지주와 자본가들의 세계는 풍요롭고 안락했다. 자유방임 시장은 그야말로 '자연적인 자유의 질서'였고, '보이지 않는 손'은 번영과 행복을 약속하는 '신의 손'이었다. 그러나 무산계급, 즉 노동자와 빈민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가난과 고통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은 냉혹하기 그지없는 '사탄의 손'이었다.

• 샤를 푸리에 - 자유니 평등이니 박애니 하는 공화국의 이념은 모두 자본주의 사회의 죄악을 감추기위한 가식이라고 단정했으며 특히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으면서 치부한 상인 계급을 미워했다.

• 벤담에 의하면 무엇이 고통이고 무엇이 쾌락인지 가장 잘 판단하는 주체는 개인이다. 따라서 각 개인이 얻으려고 하는 쾌락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가타부타하거나, 또는 제약하거나 의도적으로 장려하는 식의 외부적 간섭은 모두 부당한 것이다. 예를 들어 독서를 함으로써 얻는 쾌락과 포도주를 마셔서 얻는 쾌락 사이에는 우열을 논할 근거가 없다.

• 세이와 시니어 -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을 인간의 노동에 돌린 것", 즉 노동 가치론이었다. 세이에 의하면 어떤 상품의 교환 가치는 그 상품의 효용에 달려있다. 그리고 상품의 효용을 창조하는 힘은 인간의 노동력 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토지와 자본에도 존재한다. 이것이 유명한 "생산의 3요소"설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토지와 자본과 노동 사이의 구분은 무의미하며, 이 셋이 협력하여 '생산적 봉사'를 제공한 대가로 주어지는 보수가 지대와 이윤과 임금이다.

• 나소 시니어

  시니어는 시골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명문 이튼 스쿨과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한 수재형의 변호사이자 경제학자였다. 1825년부터 옥스퍼드의 경제학 교수로 재직한 시니어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따뜻한 동정심을 지니고 있었으며, 맬더스나 리카도와는 달리 생산력의 향상과 교육의 확대에 의해 노동자들의 생활수준과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1830년 가을 영국 남부 지역에서 벌어진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과 폭동, 그리고 심대한 사회, 정치적 불안이 그의 마음에서 가난한 사람에 대한 연민의 정을 빼앗아 가 버렸다.

  시니어는 번민과 실업자에 대한 수당과 빈민구호사업의 범위를 대폭 축소하는 구빈법 개정안 초안을 거의 도맡아 썼다. 또 아일랜드 구빈법조사위원회와 공장위원회 등의 위원으로 일하면서 노동 시간의 단축과 노동 조합의 결성을 허용하는 공장법 제정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유능한 경제학자가 따듯한 동정심을 잃어버리면 얼마나 냉혹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 사회주의는 점성술과 연금술처럼 상상력에 의해 나아간다. 그러나 경제학은 천문학과 화학처럼 관찰에 입각하여 나아간다.

• 바스띠아의 논리는 매우 단순하다. "자유시장에서 모든 교환은 거래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을 준다." 여기까지 바스띠아는 별로 독창적이지 않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인간의 모든 상호행동은 교환으로 환원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이 삼단논법의 결론은 확실하다. "인간의 모든 상호행동은 모두에게 도움을 준다."

• 사회,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쾌락을 증진하고 반대의 쾌락을 감소시키기 위해 정부의 개입을 인정한다.

• 밀은 근면한 사람이 열심히 일해서 재산을 모으는 데 반대하지 않았으며 그러한 노력의 소산인 사유재산은 보호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유럽 역사를 깊이 연구한 탓으로 19세기 영국 부자들이 모두 "아무런 생산적 기술도 없이 오직 다른 사람을 수탈함으로써만 살아온 사람들의 후예"라고 비난한 호지스킨의 견해에 동의했다. 그러나 이 점잖은 사상가는 같은 내용을 좀 더 완곡하게 표현했다.

• 밀은 동양식으로 말하자면 "중용의 도"를 지킨 사람이다. 그는 자유방임시장의 원리를 승인했지만, 실제로 존재한 19세기 자본주의 사회를 옹호하지는 않았다. 그는 또한 19세기 유럽 자본주의가 낳은 사회적 불평등과 부당한 부의 취득을 비판했지만, 유토피안 사회주의자 진영으로 기울지는 않았다.

• 다시한번 말하건데 칼 마르크스의 사상은 19세기 유럽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오늘날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는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밖에 없는" 절대 빈곤의 나락에 빠져있지 않다. 지난 한 세기의 경제, 사회적 변화는 마르크스의 사상과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적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한 세기를 뛰어넘어서까지 인류 문명의 귀중한 자산이 되고 있는 것은 그가 추구한 가치이지 그가 선택했던 방법이 아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자기 수정과 그간의 사회, 경제적 변화를 이유로 그가 추구한 이념적 가치까지도 부정하려는 모든 시도 역시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경제적 평등에 의해 뒷받침되는 자유, 소외되지 않는 노동, 정당한 근로에 의한 소득,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모든 불합리한 관습과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해방, 개인의 자유롭고 전면적인 발전 등 그가 옹호한 '영원한 진리'는 아무리 먼 미래라 할지라도 인류 문명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 자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땀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태어났다.

• 모든 지배계급을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전율하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밖에 없으며 얻을것은 곧 세상이다. 전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 칼 마르크스는 30세가 되기도 전에 "폭력과 유혈과 파괴를 선동하는 붉은 박사"라는 악명과 동시에 "인류의 해방을 가져올 새로운 사상의 창조자"라는 명성을 한꺼번에 얻게 되었다.

• "인간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의 흉상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고, 그 자신이 훌륭한 학자이면서 마르크스의 충실한 협력자였던 프리드리히 앵겔스는 "마르크스의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 우리는 위대한 역사상의 인물들에 대해 흔히 '그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해냈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마르크스에 대해서만은 이렇게 단언하기 어렵다. 만약 칼 마르크스라는 인간과 자본론이라는 저작이 없었더라면 20세기의 세계는 우리가 실제 겪어온 세계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